4월 초 이른 새벽 아침 산책을 하고 집으로 향하는 데 화사하게 핀 벚 꽃이 나를 유혹한다. 뒷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핸드폰을 꺼내 한 컷트 담는 데 옆을 지나던 아가씨도 한 카트 실례를 한다. 아마 사람의 마음은 늙으나 젊으나 같은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활짝 핀 벚꽃을 바라보다 보니 자연의 아름다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저렇게 아름답게 핀 꽃이 며칠이나 갈까 하는 생각을 하니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 오른다. 나에게도 저 벚꽃과 같이 화사할 때가 있었는가 내가 살아온 인생길을 되돌려 본다.
자연의 사계절을 되돌려 보니 어쩌면 우리네 인생과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의 봄은 인생의 유소년기요 여름은 청년기요 가을은 장년기요 겨울은 노년기가 아닐런가 짜 맞춰 본다. 봄의 새싹은 고사리손 같은 아이의 모습이요 나뭇가지마다 푸릇푸릇 돋아나는 새싹들은 유년기의 모습이고 싱그럽게 우어지는 실록은 청소년기의 모습이고 짖푸른 녹음은 청장년기요 누릇누릇 익어가는 가을은 장년기의 모습이 연상된다. 그러다 보니 을씨년스런 겨울은 해 저물어 가는 노인네 모습이랄까 생각해 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도취하다 보니 지난날들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무런 철모르고 까불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은 꼭 봄 같은 기분이었을까 생각하니 그리 아름다운 추억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6.25의 쓰라린 상처 속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이나 가난에 허덕이며 살았던 청장년기도 그리 아름다운 추억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의 청소년기는 새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2월과 3월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은 화사하여 살겠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북풍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와 한파가 오고 가는 2월이나 3월같이 불안한 유소년기를 보낸 것 같다. 내 생활이 어려워 부모님이나 이웃들의 눈치를 살피며 기를 펴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친구들의 눈치를 보며 지낸 것이 2월과 3월의 날씨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나이가 들고 사회도 발전하면서 운 좋게 고등학교에 가면서 사고의식이 점점 확대되면서 내 인생의 꽃을 피우기 위하여 욕구를 부려보던 시기로 자연으로 말하면 4~5월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어려운 생활이지만 남들이 부러워하던 대학이란 문턱도 넘어보고 오로지 내 꿈만을 위하여 열심히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러다 취업을 하여 내 마음껏 교단에서 누렸던 행복은 녹음이 우거진 6, 7, 8월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넘나들면서 여학교와 남학교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책임감 있게 남보다 더 열심히 욕심을 부리며 학생을 지도할 때 나에게는 아무런 고민이 없었다. 비록 몇 푼 안 되는 봉급이지만 돈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아이들을 기르며 내 재산도 조금씩 조금씩 부풀려 나가던 시절은 분명 한 여름의 우거진 녹음 같은 시절이라 생각된다.
이렇게 짙푸르던 녹음이 결실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 가을이 아니겠는가. 나에게도 열심히 노력한 덕에 남보다 몇 년이나 늦게 시작한 교직 생활이었지만 교감도 하고 교장도 했으며 아이들도 출가하여 자녀들을 두고 잘살고 있으니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아름다운 단풍 같은 삶이런가 생각이 든다. 이렇게 허풍을 떨지만, 자연의 아름다운 단풍 속에서도 제대로 물들이지 못하고 낙엽이 지는 잎사귀가 있듯 나에게도 전혀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만족하지 않을까? 혼자 위안으로 삼아 본다.
가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벗어버린 나무와 같이 나에게도 사회의 모든 책임을 벗어 버리고 이제는 새로운 세계를 위하여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기 위한 수양을 쌓기 위해 고독을 즐기며 혼자의 세계를 외롭지 않게 하려고 오늘도 자연을 벗 삼아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누구를 의식할 필요도 없고 무엇을 두려워 할 것도 없으니 시선 닫는 대로 바라보고 생각하며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휘몰아치는 강풍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겨울나무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헛소리를 하면서도 내가 지내온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길가에 활짝 핀 벚꽃같이 화려했던 시절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중학교에 가고자 할 때 남들의 비웃음을 받고 살던 내가 당당히 입학시험에 합격하여 중학교 현관에 붙어있던 합격자 명단의 내 이름을 보고 좋아서 껑충껑충 뛰며 냇물을 건너던 모습이나 어렵게 몇 년을 거처 고심 끝에 들어간 대학 생활은 그래도 내 인생의 꽃길이지 안았나 생각해 본다.
그러고 보니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꽃길을 교사 시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은 1980대 초 나이 30대 초반 나이로 신체상의 건강을 지키면서 행복감에 싸여 생활한 것은 속초 여자 고등 학교에서 근무한 때가 눈앞에 활짝 핀 벚꽃같이 화려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정에는 예쁜 마나님이 있고 세 딸들이 재롱을 부리는 유년기 시절에 아담한 연립주택에 살면서 학교에서는 담임의 꽃이라고 하는 고등학교 3학년 담임에 나이 어린 부장이란 직책까지 맡고 있었으니 더 부러울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학교에 출근하면 착하고 예쁜 학생들이 잘 따아주고 집에 오면 귀여운 딸들이 재롱을 떨어주고 하늘같이 바 들어 주는 식구가 있으니 몸이 조금 허실하고 엄무는 많았지만 고민이 없는 생활이었으니 그보다 더 행복은 없었던 시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활짝 핀 벚꽃에 취해 아름다웠던 지난날을 회상해 보면서 지금의 나를 되돌아보니 아무런 고민없이 자연을 벗 삼아 자연과 이야기하고 노래하며 사는 이 순간도 활짝 핀 벚꽃만큼은 못할망정 내일 모래면 바람에 휘날릴 아름다운 벚꽃잎 같은 아름다움을 가지하고 사는 내가 아닌가? 스스로 자와자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