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아침이었다.
늘 하던 습관대로 아침 산책을 5시에 나갔다.
요즘 아침 기상 시간은 4시경인데 오늘은 조금 늦잠을 자 눈을 떠보니 4시 40분이었다. 불야불야 옷을 갈아입고 물 한 모금 마신 다음 아무런 생각 없이 산책길을 나선 것이다.
평소보다 30여분 늦은 시간에 나선 것이 쾌 게으르다는 느낌을 받으며 낸 몸에 맞춰 하천 도로인 목적지를 돌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내가 요즘 걷는 길은 왕복 1만 2 천보가 조금 넘는 코스로 2시간 가까이 시간을 투자한다.
하천변을 거쳐 우리 아파트 주변에 가까이 들어올 때쯤은 7시가 막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무심코 걸어오다 아파트 주변에 다가왔을 때 불현듯 오늘이 현충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30대 어느 해부터 인가 현충일 날이며 산행을 하던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70이 된 지금도 현충일이면 산에 가고 싶어 온 몸이 안달을 한다. 허긴 금년에도 몸의 약속을 지키려 지난 토요일(6월 4일) 마누라님과 섭이랑 같이 지리산 피아골에서 임걸령을 거쳐 반야봉까지만 등산을 하겠다고 집을 나섯었다.
그런데 현충일이 월요일이라 3일 연휴의 특혜를 얻어 4일은 전북 완주에 있는 죽림 편백길을 산책한 다음 지리산 피아골로 내려가 숙식을 하고, 마누라님과 아들은 피아골 계곡에서 놀고 나는 반야봉을 등산한 다음 만나는 계획을 세우고 죽림 편백길을 찾아 가는데 보슬비가 내렸다.
분명 일기예보는 구름만 많이 끼는 날씨로 되어 있었다. 집에서 나서 30여 분 정도 지났을 때부터 빗 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전라도를 들어 설 때는 이슬비로 변하였다.
농부인 나는 비를 보니 너무 반가워 산을 못가도 좋으니 비야 내리라고 기원하면서 편백 숲을 찾아갔다. 편백 숲에 도착했을 때는 이슬비가 제법 내려 길이 질퍽하고 그리 기분 좋은 날씨는 아니 없다. 오랜만에 큰 마음먹고 마누라님과 아들 같이 나왔는데 ----
숲 속 길은 날씨가 화끈하여야 산속의 기막힌 공기 맞을 느낄 수 있는 데 우중충한 날씨에 비를 맞으며 우산을 쓰고 걷는 것은 청성 맞은 일이었다. 머리가 단순한 섭이는 아빠 엄마랑 나온 여행이 별로라는 생각인지 기분이 조아 보이지 않고 은근히 짜증을 냈다. 결국 우리는 비를 피하여 점심을 먹고 집으로 철수하였다. 그러다 보니 금년 현충사의 산행은 취소된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현충일이 되면 강원도 속초 살 때는 설악산 대청봉을 오르고 충청도에 와 살면서는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던 행사가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6월의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땀을 펄펄 흘리면서 설악산이나 지리산을 오르는 것은 내 인내력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도 싶고 젊은 날 학교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윤리과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육이오를 잊을 수 없어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분들의 고행을 되새겨 보는 날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금년을 마누라님과 아들이 따라붙어 식구들은 계곡을 거닐기로 하고 나 혼자만 산행의 고행을 맞보기로 하였으나 그나마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취소하기로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어제는 집에서 푹 쉬며 그동안 밭에서 지친 몸에 충전을 하였다.
이런 나에게 현충일 아침 산책을 하다 보니 산에 가고 싶은 생각이 몸에 근실 근실 해서 아무래도 산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내일은 건강 검진이니 못하고 모래는 밭을 한 번 가 봐야겠고 글피나 지리산 피아골 계곡을 올라가야겠단 생각을 가지며 현충일을 떠 올리게 된 것이다.
현충일이 떠 올라 무심코 아파트를 처 바보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아파트 단지를 두 곳이나 스쳐 갔는데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7시쯤이면 휴일이라고 하지만 아침 4시 50분이면 날이 밝으니 일어나 활동하는 사람이 쾌 있을 건데 하면서 유심이 살펴봐도 한 집도 태극기를 게양한 집이 보이지 않는다.
학교에 근무할 때 6월 5일만 되면 아침 직원회의 때 학급 담임 선생님들에게 내일은 꼭 조기를 게양하고 오전 10시에 사이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나 1분간 묵념을 하도록 지도해 달라고 부탁을 하고 종례 직전에 방송을 통하여 내가 직접 교육을 한 것이 얼마이며, 6월이면 전교생에게 국군 아저씨께 편지를 써 오도록 지도도 쾌 많이 했는데 이제는 6월이 호국의 달이라는 의미도 없어졌나 보다.
아마 현충일은 공휴일이 부족하여 하루 쉬는 날로 변하였나----
허긴 선생을 하는 내 셋째 딸 가족들도 어제 즈 서방 회사 동료들과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캠핑을 떠났다니 할 말은 없다. 다만 지난날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혼자 열을 올리며 가르쳤던 시절이 쓸쓸할 뿐이다.
세상이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내 국가가 온전해야 우리가 마음 편이 살 수 있을 진대 요즘 사람들은 내 조국 내 국가를 너무 등한이 하는 것이 않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는 우리에게 일제 침략 35년 같은 경험은 오지 말아야 하고 육이오 같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데 우리의 역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마 다 살은 늙은이의 필요 없는 근심인지 혼자 쓸쓸히 웃으며 내 태극기함에 태극기를 꺼내 정성껏 조기를 달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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