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자고등학교에서 12월 3학년 담임인 나는 학생들의 대학 입학원서 써주기에 정신이 없었다. 그해 수능 고사 수학이 어려워 여학생들의 점수가 낮게 나타나 각 대학의 합격선을 분석하는 데 정신이 없었다. 여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과는 합격선을 낮게 잡아 줘야 진학할 학교가 나타나는 것이다. 예년의 합격선을 보고 원서를 써 준 학교는 학생들이 학교를 한 등급 내려서 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처음 해 본 여고 3학년 담임이었지만 내 판단이 적중하여 우리 반 54명 중 36명이 4년제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 정도 학격생을 배출한 것은 보기 드문 진학상황이었다. 같은 학교 다른 반 보다 자그만치 10여 명 정도나 더 진학을 시킨 것이다.
원서 쓰기에 정신없는 나에게 같은 또래인 물리 담당 선생님이(연고지가 전남) 도간 전출 내신을 내자고 한다. 내가 학생지도에 바빠 하니까 선생님은 나에게 호적등본 한 통만 달라고 해서 집사람을 시켜 호적 등본을 한 통 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즉 그 선생님이 내 대신 타시도 전출 내신서를 작성한 것이다. 나는 부모님이 충남에 거주하고 대학을 전북에서 나왔기 때문에 충남이나 전북으로 도간 전출을 하고자 중학교에 근무할 때 몇 번 시도했으나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 번 기회가 온 것도 교장 선생님이 반대하여 떠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이라 전출은 포기하고 속초에 새로운 연고지로 정하고 정착하기 위하여 그럴싸한 집도 한 채 장만하여 살고 있었다. 그리고 내신서를 낼 때 교감, 교장 선생님은 김과장은 부모님이 충남에 계시니 언젠가는 가야 하니까 아무런 생각 없이 내신서에 도장을 찍어 주었단다. 중등 교사가 강원도에서 충남으로 전출한다는 것은 사회적 배경이 없는 교사는 하나의 꿈에 불과 했기 때문에 부담없이 내신서를 써 주신 것이다.
그런데 2월 25일 나와 같이 있는 윤리과 차석 선생님이 영서지방으로 내신을 냇기 때문에 학교 송별회가 끝나면 2차로 우리 집에서 촐촐하게 소주나 한잔하려고 집 사람에게 안줏거리를 부탁하고 10시 30분쯤 출근하여 교무실에 들어가니 늘 나와 있는 교감 선생님과 교무과장님이 교장실에 갔다고 보이지가 않는다.
얼마 후 교장실에서 나온 교감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이 보잖다고 하면서 나를 교장실로 데리고 가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충청남도로 발령이 났다는 것이다. 아마 이때 기분은 상상을 못 할 정도로 좋은데 교장실에 들어서자 내 환한 모습에 교장 선생님은
"김 과장 학교는 날이가 낮는데 김 과장은 웃어?' 하시는데 표정 관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다음 교장선생님 말씀은
"본인이 조의면 됬고 후임 윤리 선생님을 추천해 주세요".
"신학년도 연구과장 겸 3학년 1반 담임으로 3학년 총책을 맡기려 헀는데?" 하시며 한숨을 내 쉬시는 것이다. 속초여고에 근무하는 동안 나는 상사들로부터 신뢰가 두터운 교사였다. 휴일도 없이 학생들과 어울렸으니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면 학생들과 같이 교실에서 책을 본다든지 아니면 음악을 듣고 있었으니 학생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지도하니 우리 반 성적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점심시간부터 시작된 송별회가 3차까지 가다 보니 밤 11시경에 끝나 나는 술에 떡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약주도 안 하시는 교장 선생님이 끝까지 참석해 주신 것이다. 교장 선생님 존함이 이배은 선생님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만난 19분의 교장 선생님 중 가장 훌륭한 교장 선생님으로 기억하고 있다.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면 과감하게 투자를 하셨고 시대에 걸맞지 않게 사모님을 시켜서 학년 초면 제일 먼저 3학년 담임, 그다음 주임 교사들을 자기 집에 초대하여 잘 부탁한다면서 음식을 대접하던 분이니 어떤 분인가 짐작이 갈 것이다.
이렇게 해서 충남에 와 보니 강원도 영동의 시골 선생이 왔다고 발령을 내준 곳이 천원군 천남중학교(지금은 천안시 임) 였다. 내게 배당된 업무는 윤리과 주무에 67명이나 되는 1학년 1반 남학생 담임이었다. 조용한 여고 3학년 담임을 하다 갑자기 개구쟁이 중학교 1학년 남학생 담임을 맡았으니 적응하는데 많은 시간이 결었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학생들의 따귀도 때리는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원래 학생들에게 존칭을 써오던 선생이었는 데 따귀를 올려붙이는 선생으로 변하는 갈등까지 겪은 것이다.
처음으로 천남중학교에서 4년 반을 근무하면서 윤리과 업무, 학생과 업무 등을 보면서 3학년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교사로 학력 신장에는 여전이 열심이었다. 3학년 학생들을 7시 30분까지는 모두 등교시켜 자율학습을 하도록 지도하는 열정은 식지 않았다.
사진속에 직원들과 나들이 한 모습이나 소풍 가서 찍은 사진 학부모와 어울린 장면, 개교 15주년 행사에 체육 교과도 아닌 사람이 학생들을 지도한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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