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파노라마

속초여자고등학교 근무(83.03.23~84.02.28) 시절 사진 모음

일릉 2015. 7. 27. 14:11

나의 인사이동에 대한 시련이 끝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속초중학교에서 3월 22일 3교시 수업을 마치고 나오니 교무실에 상주하는 교무보조 아가씨가 내게 다가와

"과장님 발령이 났데요"

"교감 선생님이 화가 많이 났어요" 하는 것이다. 

어안이 벙벙한 나는 누구에게도 말도 못 하고 서무과 과장을 찾아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보았다. 서무과장은 설악여중에서 같이 근무한 분으로 나에게 친절히 대해주던 사람이었다.

그 분은

"내일부로 속초여고로 발령이 나 교감 선생님이 욕을 먹으면서 과장 자리를 주었더니 앞에서는 과장 자리를 달라면서 뒤로는 도 교육청에 줄을 대 인사운동을 했다고 화가 단단이 난체로 점심 식사를 하려 갔어"라고 한다. 어이가 없었지만, 수업을 다 하고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아마 송별연도 없이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으로 기억된다.


3월 23일 속초여고에 부임하니 진풍경이 나타났다. 나의 보직은 윤리과 차석이며 담임은 1학년 5반으로 모두 다 내가 오기를 기다리고 비워 놓았던 자리다. 그날 1교시가 끝나면서부터 6교시가 끝날 때까지 교무실이 북적댔다. 이유는 설악여중에서 내가 가르쳤던 학생이 그 학교에 5분의 2가 넘으니 1학년서 3학년까지 학생들이 거의 한 번씩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간 것이다. 오죽하면 교무부장이 나중에는 화를 내는 일까지 벌여 젖으니 진풍경이 아닌가?


내가 속초여고로 발령이 나게 된 것은 도 교육청에서 속초여고에 윤리 교사를 배치할 사람이 없자 학교에서 중학교 교사 중 선택하여 추천하면 발령을 내겠다고 하여 속초 교육청에 의뢰하니 속초 교육청에서 나를 추천했단다. 아마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났을 땐데 그때는 어디에 항명할 처지가 못 되었다.

 

그 당시 학생들 사이에는 자기네 학교 선생님 중 어느 분이 가장 좋은가 하는 인기투표가 유행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들로부터 넘겨 들은 이야기지만 설악여중에서 내가 인기가 제일 높았던 선생님 이었단다. 아마 엄하게 다스리 되 편애 하지 않았던 것이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특히 학업 성적이 처져 있던 학생들이 더 많이 나를 따른 것으로 알고 있다.


속초여고에서는 3학년 담임을 하면서 학업 성적을 올려 보겠다고 우리 반 학생들을 아침 07:30분에 등교시켜 밤 10:00까지 자율 학습을 시킨 일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인 것 같다. 일요일 오전만 자유 시간을 허락하고 공휴일도 학교를 나와 공부하도록 했다.


졸업식 후 속초시 중학교에 근무하던 사회과 선배 교사이면서 학부모님 이시던 분의 이야기가 자기 딸이 10월 1일(토) 군국의 날, 2일(일), 3일(개천절)로 3일 황금 연휴가 생겨 많은 학생들이 놀러 갈 계획을 세웠으나 담임이 전과 동일하게 학급을 운영한다고 하자 모두 비웃었단다. 그러면서 우리 선생님이 토요일 오전이나 벗티나 보자고 했는데 토요일 하루를 밤 10시까지 학생들과 똑같이 생활 하자, 놀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공부하기로 했다면서 학생과 교실에서 같이 3일 간을 생활하는 선생님이 위대하게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딸을 강원대 영어교육과 4년 장학생(수석 합격)으로 합격하게 만들어 준 것을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부부가 우리 부부를 초대하여 저녁 식사를 대접 해 줬다. 


그리고 동료 선생님 및 학생들과 설악산 대청봉을 넘던 추억, 학부모와 동료 선생님과 울릉도 성인봉에 오른 기억, 원로 선생님을 모시고 설악산 한계령에서 권금성까지 등산하면서 새벽 5시에 설악동에 도착한 추억 및 갖가지 추억들이 가득하다. 아마 내 교직 생활에서 가장 멋질 때로 알고 있다. 어느 친구가 당시 유행하던 종이학 천마리를 접어 주는 데 고마워 하기 보다는 앞으로 이런 시간에 공부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잘 보관하겠다고 건네받은 종이학 유리 상자는 15년은 족히 가지고 이사를 다닌 것으로 아는 데 어느 날인가 사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