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虛像들 보며 살아간다. 그런 허상에 사로잡히다 보니 TV 연속극에서도 '도깨비'라는 작품이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인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도깨비와 같은 허상을 가지고 그 허상을 꿈꾸며 살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 70에 가장 뚜렷하게 느낀 虛像 하나가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이야기를 옮겨보면 내 나이 갓 20살 때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진학하고 싶은데 진학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다. 집안 살림이 어려워 도시에 나가 학원에 다니며 공부할 처지도 못 되고 집에서도 공부할 방이 없으며 일하는 부모님과 많은 동생들로 공부할 분위기가 못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 나와 진악산이라는 산자락 밑에 있는 인삼밭에서 다락을 지어놓고 혼자 밥을 끓여 먹으며 생활한 적이 있다.
마을에서 2km쯤 떨어진 해발 700m가 넘는 산자락에 혼자 기거하고 있으니 어린 나이라 무서움도 있었으나 이를 이겨내고 공부를 한다고 생활하고 있었다. 낮에는 간간 풀(인삼밭 거름)하려 지나다니는 풀 꾼들과 5 일만에 돌아오는 장날이면 산 너머에 사는 사람들이 장을 보려 지나다닐 뿐 사람을 거의 보기가 힘들었다. 봄에는 산에서 취나물과 고사리를 꺾어다 나물죽도 끓여 먹으면서 봄부터 가을까지 한 해를 보낸 적이 있다.
1960대 우리나라는 무척이나 가난한 나라였다. 그러다 보니 금산이란 곳은 농산물로 인삼이 유명한데 인삼 도둑이 심하여 3년이 지난 인삼밭은 저녁에 사람이 자면서 땅이 얼 때까지 시켰다. 이처럼 사람이 지키는 데도 종종 외곽지대에서는 도둑이 떼로 와 인삼지키미를 위협하여 다락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인삼을 캐갔다는 소문이 종종 돌기도 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나는 유사시 무기로 사용하기 위하여 인삼밭 다락에 손도끼와 아령을 가져다 놓았다. 잠을 잘 때면 손에 닿는 잡기 좋은 곳에 놓고 잠을 잤다.
그날은 유독 달도 밝았다. 보름달이여었던 모양이다. 밤 12시까지 책과 씨름하다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자다 들으니 밖에서 울타리 뜨는 소리가 들린다. 숨을 죽이고 계속 자는 체한다. 울타리 나뭇가지를 부러트리는 소리가 나더니 울타리를 넘어오는지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그러고 발소리를 죽이면서 걸어오는지 살금살금 기어 오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바르게 누운 체 자는 체하며 소리가 나는 왼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오른손에 도낏자루를 움켜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거적으로 만든 문 한쪽이 살며시 열린다. 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자니 거적 문을 들고 사람이 얼굴을 들여 민다. 내가 자나 안 자나 살피는 모양이다. 나는 순간 벌떡 일어나면서 도끼로 사람 얼굴을 내려찍는다. 그러자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뛰쳐나간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들은 소리는 쥐란 녀석이 지푸라기를 씹는 것이 울타리를 뜯는 소리로 착각했으며 쥐를 사람 얼굴로 착각한 것이다. 일어나 생각하니 쥐가 아니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겁이 발칵 낫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얼굴이 두 쪽이 나지 않았을까? 도끼에 맞은 거적 나무는 푹 파여 있었다. 쥐가 어쩌면 그리도 현명하게 사람의 얼굴로 보였을까? 거적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니 서쪽으로 기우는 달빛이 휘영청 청 했다.
이 사건이 나타난 이후 나는 虛像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보곤 한다. 어릴 때 밤길을 걸을 때 희끗희끗 보이는 것이 도깨비가 아닌가 겁을 먹기도 하고 특히 혼자 밤중에 공동묘지 옆을 지날 때 귀신이 나오지 않나 하는 공포증을 느낄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이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허상이란 자기 마음에서 나타나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 귀신이나 도깨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결론에 도달하다 보니 神을 부정하게 되어 부처님이나 하나님을 믿지않는 무종교인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神이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神을 볼 수 있으며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신을 만나려면 그만큼 믿음이 강해야 신을 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믿음이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이요 精神이란 뜻이다. 정신이란 精자는 '정할 정'자요 神자는 '귀신 신'자니 정신이란 바로 귀신을 정한다라는 말이 된다. 즉 자기가 신이라고 정하면 신이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면 精神을 가진 우리 사람은 누구나 신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이 바로 신이라는 말이 된다.
내가 젊은 시절 읽어 보았던 어느 스님의 수필집에 이런 말이 떠 오른다. '사람은 귀가 있다고 하여 듣는 것이 아니요, 눈이 있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음으로 듣고 싶어야 들을 수 있고 보려고 해야 볼 수 있다'라고 한다. 그 글귀를 읽은 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교단에 있을 때 학생들에게 무척이나 강조했던 기억이 있다. 바로 내 눈앞에 있다고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어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면 볼 수없다는 말이다. 즉 허상은 마음에서 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다만 얼마만큼 몰입하느냐에 따라 보이고 안 보이고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눈에 백내장과 녹내장 끼가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 것인지 허상이 잘 보인다. 분명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아니고 다른 물체를 사람으로 착각하는 虛像이 종종 나타난다. 아마 精神이 바르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하긴 앞으로 살을 날 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니까 그런지 모르겠다. 어릴 때나 젊어서는 두려움에서 허상이 나타났는데 이제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이 없는데도 허상이 나타나는 것은 늙은이라 허깨비를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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