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까지 밭에서 1년간 재배한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데 정신이 없었다. 해보지도 않은 농사일을 늙어서 해보니 그리 쉽지만은 않다. 더구나 시대에 맞는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재래식 농기구를 사용하여 노년의 무례함을 달래기 위한 농법이니 알만하지 않은가? 시간 나는 대로 삽이나 쇠시랑으로 땅을 파 감자, 고구마, 참깨, 땅콩밭을 4~5백 평 일구어 농사를 짓고 나머지 1,000평은 트랙터로 노타리만 치고 밭이랑을 손수 만들어 콩과 깨 등 농사를 지니 노인네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허리도 안 좋은데 쭈그리고 않자 고구마를 캐고 땅콩을 캐는 데는 며칠이 결렸으며 특히 서리태나 메주콩을 터는데도 도리 개를 만여 번은 더 후려 첮을 것 같다. 그럴 때는 좀 쉬었으면 하면서도 이를 물고 누가 이기나 시험이라도 하는 듯 참고 일을 했는데 겨울이 되어 고작 한 달 쉬고 보니 봄이 그립고 밭에서 농사일이 그리워진다.
정초 몰아치는 한파를 이겨 내겠다고 늙은이가 마스크를 하고 털모자에 오리털 잠바를 입은 채 새벽 산책으로 두어 시각 때우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집에 있자니 온몸이 쑤신다. TV를 켜 봤자 눈만 아프고 재미도 없다. 뉴스를 보면 오히려 짜증만 나고 영화나 연속극도 재미가 없다. 식구라야 단 세 식구인데 모두 다 아침을 먹고 나면 나가고 없어 책상 앞에 앉자 컴퓨터에 매달였다 혼자 찬밥 한 그릇을 물을 넣고 펄펄 끌어 푹 퍼지게 하여 김치 한 포기 꺼내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점심을 때운다. 내가 밥을 끓여 먹는 것은 반찬이 별로 필요 없고 소화가 잘 되기 때문에 직장에서 퇴직한 후 겨울이면 혼밥으로 해 먹는 음식이다. 이와 같이 혼밥을 먹기 시작한 지도 벌써 8년째가 되었다. 여름에는 농장에 가서 도시락을 혼자 먹고 겨울에는 집에서 끓인 밥을 혼자 먹는다. 사랑스러운 마누라가 있지만 그가 곁에 있으면 오히려 방해가 되어 떨어져 있는 것이 속이 편하다. 이런 생활이 나만 겪는 것인지 아니면 내 세대가 겪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하루 근 2만여 보 걷든 걸음 숫자를 줄여 보려고 했지만, 하루 시간 보내기가 너무 지겨워 오후에 다시 산책길로 나선다. 늙은이 거름이라 그런지 대다수 사람은 나를 앞질러 간다. 다른 사람이 앞질러 간다고 허둥댈 것도 없고 내 걸음 나는 대로 허리를 꼿꼿이 펴고 無念에 빠진 체 걷고 또 걷는다. 이왕 나왔으니 못 걸어도 만 보는 채워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새벽 만 보 오후에 만 보 이만 보가 되는 것이다.
얼마나 살겠다고 이 추운 겨울에 입에서 품어 나오는 입김이 눈섭썹을 하얗게 만들었는데도 걷고 또 걷는다. 하긴 내가 이렇게 열심히 걷는 것은 5년 전 밭에서 일하다 허리가 삐끗하여 주죠 안 진 후 시술을 받았지만 고치지 못하고 다시 1년 후 수술을 받은 다음부터 거의 빠진 날이 없이 만 보 이상 걷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습성이 되어 이제는 2만 보 가까이 걷는 것이다. 이렇게 걷다 보니 허리가 튼튼해 저 농장에서 일하는 데 별로 부담이 없고 등산에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걷다 보면 별별 생각을 다 한다. 초기에는 허리 병을 낫겠다고 힘든 것을 참으며 별별 생각을 다 하면서 걸었는데 1년이 가고 2년 3년 가다 보니 이제는 無槪念으로 걷는다. 처음에는 같은 길을 두 시간씩 걷는다는 게 무척이나 지루하여 걸음걸이 숫자도 세어보고 또 음악도 들으면서 걷기도 하고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하며 걸었는데 이제는 이도 저도 다 지친 것인지 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지 못하고 매일매일 반복한다. 올해는 작년보다 정초부터 걸음 숫자가 많아진다. 나이가 거꾸로 가나 알 수는 없지만 걷기 시작한 후 허벅지 근육이 단단하게 변하였다.
나이가 70이 넘어가니 세상에 관심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정치가 어떻고 경제가 어떻고 다 남의 일 같으며 죽음도 두려움이 없다. 이 정도 살았으면 충분히 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같지고 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다만 병석에 누워 고통받지 말고 짧은 시간에 깨끗하게 죽어야 하는데 하는 마음뿐이다. 한 달 정도 지났나 지난 달에 내 동갑 자리가 스포츠타운에서 열심히 헬스를 하고 목요 탕에서 목욕을 하다 숨을 거둔 모양이다. 아직 70 초반에 죽은 것이 안쓰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내 생각은 참 그 친구 죽음 복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헬스장에서 충분히 땀 흘리고 목욕탕에서 깨끗이 씻고 죽는지도 모르게 죽었으니 얼마나 멋진가? 죽음의 두려움이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이 세상을 하직한 것이 아닌가?
이 친구 죽음 소식을 접한 후 보름도 안되어 이 번에는 나와 모임을 두 개나 같이하는 친구가 쓰러젖다는 소식이 들어온다. 평소 여러 가지 성인병을 가지고 있어 몸 관리를 특별히 하는 친구인데 자고 일어나 보니 쓰러져 있다는 것이다. 그 친구와 평소 대화를 나눌 때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다 하루아침에 가야 할 텐데'라고 늘 말해 왔는데 그리 되지 못한 모양이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왔다는 소식에 병문안을 나녀 와서 좋은 소식이 잇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들여오는 소식이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 갔단다, 겨울이라고 하는 계절은 노인들에게 저승사자인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또 인근 시에서 교직생활을 했다는 또래 한 분이 쓰러 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허전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병문안 때 보았던 친구 모습이 눈앞에 어른 거려 마음이 심란해진다. 삶과 죽음이 무엇인지. 왜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갈등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갈등에 쌓인 나에게 서산대사 시비에 있는 "살아 있는 게 무엇인가?"라는 글이 카톡방에 들어 와 옮겨 보았다.
살아있는 게 무언가?
서산대사 시비에서
들어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거지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라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생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 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 구름이 스러짐이라,
너무나 마음에 와 닿는 글이라 그대로 옮겨 보았다. 죽고 사는 것은 숨 한번 쉬고 못 쉬고 차이인데 머 그리 아웅다웅 살려고 발버둥 치는가? 남은 인생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헉헉 대지 말고 허~ 허~ 허~ 너털웃음 웃으며 건강하게 살다 미련 없이 가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