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후반 교사 생활을 하고 있던 나에게 행운이 왔다. 어느 일간지에서 실시하던 '일본 속의 한민족사' 탐방의 일원으로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사회 교과를 담당하는 교사 500명을 각 시도 교육청에서 추천받아 일본 속에 있는 우리 민족 문화를 탐방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충남교육청에 배당된 7명 속에 한사람으로 나도 추천을 받아 참가하게 된 것이다. 우리 도에서 참가한 사람은 인솔자로 도 교육청 장학사 한 사람과 교사 6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학사 방에서 평가회 겸 탐방 소견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 일곱 사람은 모두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사회 분야(윤리, 역사, 지리, 일반사회 등)를 가르치는 사람들인데 1주일간 보고 느낀 것은 서로 달랐다. 어떤 교사는 일본의 경제성장면을 보고 "우리나라는 영원히 일본을 잡을 수 없다"라고 비관적인 표현 하는가 하면 또 어느 교사는 "아무리 잘 살아도 지진이 심하다는 일본에서는 살기 싫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일본의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하나도 부러운 것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그들의 시민의식이 정말로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언제 이런 시민의식을 갖게 될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일주일 동안 "불법주차를 한 자동차를 한 대도 보지 못했으며 탐방지 곳곳을 다녀 봤지만, 휴지가 하나도 없고 시골길을 지날 때 밭에 있는 원두막에 무인판매가 신기하게 보이더라."고 말을 했다. 그렇다. 그들은 조그마한 시골 마을인데도 우리나라와 같이 길에다 차를 주차하는 것이 아니라 집마다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수박밭을 지나가는 데 사람은 없고 수박과 돈 통만 있는 무인판매를 하고 있었으며 탐방지 가는 곳마다 휴지통에 휴지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휴지통에 휴지를 구경한 것은 어느 큰 사찰을 들어가기 전 동물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만 휴지통에 휴지가 가득한 것을 보았다. 대학에서 공부할 때 일본사람들은 민주시민의식이 세계에서 제일이라는 말은 교수에게서 들었으나 설마 했었다. 그리고 많은 연수를 통하여 일본은 국가가 부자지 국민은 검소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도로를 만들면 그 도로가 개인 주차장이 되는 나라가 아닌가? 심지어 불이 나도 소방차가 지나갈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 도로인데 이 나라에서는 내 눈에 불법 주차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는 나는 일본을 두둔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괴롭혔는가. 삼국시대부터 동양의 해적이라고 하는 왜구가 우리 해변에서 노략질한 것을 어찌 일일이 열거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근대에 와서는 35년이라는 긴 세월을 식민통치까지 하지 않았나. 그러나 미운 것은 미운 것이고 부러운 것은 부러운 것이다. 분명 내 눈에 비친 일본의 첫인상은 시민의식이 강한 나라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 시민 의식이라 무었인가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시민의식이란 도시 및 국가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으로서 가지는 공통된 생활 태도 또는 견해나 사상이라고 적혀 있다. 즉 집단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생활 태도나 견해 또는 사상이란 뜻이다. 이런 시민의식이란 말을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들어 본 기억이 없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해방이 된 지 얼마 안 되었고 한국전쟁이 휴전된 지 얼마 안 되어 학교 교육에서 강조한 것이 시민의식이 아니라 민족의식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민족의식이란 한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로 민족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민족에 대해 가진 관념이나 의식으로서 일반적으로 집단의식 혹은 사회의식을 말한다. 그러고 보면 집단의식이나 사회의식으로 본다면 시민의식과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족의식이 시민의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민족의식은 민족을 우선 하기에 타민족을 배타하는 성격이 있다. 자기 민족만을 우선하는 사상이란 뜻이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끈질긴 민족의식을 가진 민족이 서구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요 동양에서는 한민족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아마 두 민족 다 주변 국가로부터 끊임이 없는 침략을 받아 왔는데 이를 잘 극복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민족의식이 없는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란 나라다. 미국은 어느 한 민족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민족을 강조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에서 강조하는 교육은 시민의식을 강조하는 교육, 즉 민족보다는 국가를 강조하는 교육을 하는 나라다.
오늘날은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어떤 한 민족으로서 구성된 나라가 자기 나라만을 강조하다 보면 외톨이 국가가 되는 것이다. 외톨이 국가가 되면 국가 발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상호 문호를 개방하여 상호 교역과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후진적인 약소국가 시절 강조했던 민족의식이란 말은 점점 사라져 가고 세계화 국제화에 걸맞는 시민의식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의식을 버리면 되겠는가? 반성해 보고 시민의식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우리 민족의식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우리 국민들의 시민의식 발전과정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해방된 지 70여 년이 조금 지나지만, 그 70여 년에 엄청난 변화를 겪은 것이 우리나라인 것 같다. 1950~60년대 가난도 하였지만, 국민들의 민도가 낮아 시민의식이란 상상을 할 수 없었다. 그저 자기의 욕망만 채우는데 급급했던 것 같다. 공공 화장실을 가면 발을 어디에 더뎌야 할지 몰랐고 버스나 기차를 타려면 새치기에 고함이 오가며 밀치기를 하든 상상할 수 없는 사회였다. 그런 나라 사람들이 지금 어떻게 변화하였나 기억해 보았다.
나는 강원도 속초라는 곳에서 중등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내 본가는 충청남도로 부모님을 뵈려면 속초에서 강릉을 나와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에 와서 다시 대전행 버스를 갈아타야 집을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그 당시는 담배를 태우는 것이 큰 벼슬이나 한 모양 자동차나 기차를 타면 좌석에 앉기가 바쁘게 담배부터 한 대 피우는 것이다. 의자마다 재떨이가 다 부착되어 있으며 어떤 재떨이는 꽁초가 가득하며 가래침을 뱄어 놔 지저분하기가 그지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그 시절의 시민의식이니 참을 수뿐이 없고 나도 같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었다. 그런데 1980년 전후의 일이다. 고향을 다녀오기 위하여 강릉에서 고속버스를 탔는데 버스에서 담배를 태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군인 아저씨들은 제일 뒷좌석으로 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참 신기했다. 속초에서 강릉까지 버스에서는 담배를 피웠는데 강릉 서울 고속버스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 서울에서 대전 고속버스를 타니 이곳에서는 전과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왜 그럴까? 하고. 내가 얻은 결론은 서울과 강릉을 오가는 승객들은 의식 수준이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니 서울에서 대전을 오가는 버스에도 담배가 사라지고 4~5년이 지나니 열차 객실에서도 담배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금연 구역은 점점 확대되어 이제는 식당은 물론 공공장소에서도 금연 하는 것이 하나의 시민의식으로 변하여 가고 있다.
그러다 1980년 후반쯤 오니 버스 승차장에서 줄을 서는 모습이 나타났으며 새치기나 밀치기는 시골 장이나 가야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나타났다. 하긴 이런 속에서도 가끔 나잇살이나 들은 분들이 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났지만, 그도 길게 가지는 못하였다. 요즘은 어떤가.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누가 줄을 서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사회로 변하지 않았나.
그 지저분하고 낙서로 가득 찼든 공동 화장실. 어쩌다 급하면 아니 갈 수도 없고 했는데 이제는 얼마나 깨끗하고 화장지가 없다고 당황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되지 않았나. 문득 3년 전에 동남아 어느 국가를 여행할 때 생각이 떠오른다. 그 나라 수도의 기차역인데 우리나라 화장실로 착각하고 화장실을 갖다 기겁을 했다. 꼭 우리나라 60년대 시골 장터 공동화장실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화장실은 세계에서 최고란다.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을 여행해 보면 화장실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여행을 가본 사람은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이처럼 시민의식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에 소속된 사람들이 스스로 느껴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2002년 세계적인 행사인 월드컵을 개최한 나라다. 그때 붉은 악마라고 하는 응원단을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에서 관여했는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치며 응원한 것이다. 그리고 2016년에 나타난 촛불집회는 누가 참여하라고 했다면 그렇게 많은 인파가 참여했을까?
우리나라가 이처럼 시민의식이 높아진 것은 그동안 나는 못살고 고생했지만 내 자녀만은 잘 살게 만들어 주겠다고 허리띠 졸라매며 교육한 부모님의 고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자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배려정신이 나타나고 더불어 같이 잘살아 보자는 시민의식이 나타나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사고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한 구석에서는 저만 잘 살겠다고 설치는 금수저들이 있어 제 식구나 인척만 잘 살겠다는 얌체 족속들이 사회적 지위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제는 어떤 권력이나 지위를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들의 높아진 시민의식이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