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생활)

늙은이 겨울나기

일릉 2018. 2. 16. 12:47


눈이 수북이 쌓인 추운 겨울날 퇴직하고 시작한 '1일 만 보 이상 걷기'를 실천해 보겠다고 시작한 걷기 운동을 위하여 칠순이 넘은 늙은이가 마스크에 두툼한 오리털 잠바를 입고 산책길을 나섰다. 평소 같으면 별로 힘들이지 않고 걷었겠지만, 눈이 제법 싸인 눈길을 걷다 보니 힘이 든다. 걷기 시작한 지 벌써 만 4년이 지났다. 척추 수술 후 허리 근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시작한 '1일 만 보 이상 걷기'를 시작하면서 인생 90을 잡고 30년 동안 일억 보를 걷겠다고 마음을 굳힌 것이 벌써 햇수로는 6년째가 되었다.


그동안 독하게 실천한다고 했지만 지난해 부터는 조금씩 나태해지는 것 같아 이를 막기 위하여 매일매일 스마트폰에 찍힌 만보기의 기록을 책상 위에 있는 달력에 기록하면서 실천한 것도 만 2년이 지났다. 이처럼 매일 걸음 수를 기록하다 보니 신기하면서 재미가 나 점진적으로 걷는 걸음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달력에 걸음 숫자를 적기 시작한 첫해는 하루 평균 12,481보를 걸었는데 그다음 해는 16,718보로 나와 있다. 그런데 올해는 2월인 지금까지 걸음 숫자가 점점 늘어나 하루 평균 22,190보가 넘게 나왔다. 더구나 올해 겨울은 유독 추웠는데도 달력에 숫자를 기록하는 재미로 새벽 5시만 되면 일어나 1만 보를 걷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나면 또 다시 걷는다. 어느 날은 오후에도 나서다 보면 3만 보가 가까이 나오기도 하는 나의 걷기 운동이다.


이렇게 걷고 또 걷는 나를 보고 부러워하는 친구도 있지만 어리석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이 나이에 누구를 의식해서 행동할 나이인가. 집에서 소파에 앉자 TV를 보면 눈도 침침해지고 골머리도 아프고 허리가 뒤 뜨려 누워서 보면 고개가 뻣뻣해지고 컴퓨터 앞에 앉자 기삿거리 몇 개 읽으면 눈이 초점이 맞지 않고 치매를 예방하겠다고 횡설수설 손가락 장난을 치는 것도 몇 시간이지 가진 것은 시간뿐인 늙은이가 이 추운 겨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푹 뒤집어쓰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 타령하며 대자연을 감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랴.


어제는 저쪽 길을 걸었으니 오늘은 이쪽 길을 걸어 볼까? 걷는 것도 마음대로 선택하고 혹시 사고라도 날까 봐 가능한 도로를 건너는 것을 피하여 육교나 지하도를 이용하고 눈이라도 오면 오르막이나 내리막인 비탈길을 피하여 길이 험하더라도 계단을 이용하여 걸어 본다.


이렇게 걷다 보면 매일매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다르다. 어느 날은 문득 어머님 생각에 젖어 들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어린 시절 친구들과 놀던 추억들을 회상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가정에서 얽히는 일들이나 지난날 직장에서 있었던 각가지 일들을 회상해 보기도 한다. 매일 서너 시간씩 걷는 산책길이고 보면 내 인생 살아온 추억을 다시 되풀이하고 되풀이하는 영화관의 영사기 같은 머리가 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서울같이 복잡한 대도시가 아닌 것이 천만다행이고 너무나 한적한 시골이 아닌 것도 행운이다. 인구 6~70만이 사는 도시의 신흥 개발지역이라 아파트에서 뒤쪽으로 몇백 m만 가면 숲이 우거진 자그마한 동산이 있고 앞쪽으로 몇백 m만 가면 천변이 있으니 늙은이 산책하며 살기는 제격이라 이만만 해도 복중에서도 큰 복을 받은 것이다.


새벽 산책하러 나가면 새벽 산책대로 늘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반갑고 낮에는 낮에 대로 만나는 사람이 있으니 반갑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이 어디에 사는 누구신지 모르지만, 혹시라도 안 보이는 날은 궁금 증도 나타난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하루에 10번 이상 웃어야 한다니 집에서 특별히 웃을 일이 없는 사람이라 산책을 하면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마스크 안에서 입가에 미소를 띄우는 방법을 사용하다 보니 웃는 웃음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내가 내 인생을 생각해 봐도 참 신기하다. 도사는 아니지만, 인생 칠순이 넘어가니 내 마음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누라한테 스트레스받지 말고 자식들한테 스트레스받지 말고 성질대로 안 되면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세상살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도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요, 부처님이 말하는 열반의 세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가 도사요 내가 열반의 세계에 들어와 사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 보니 그렇게도 지긋지긋하던 한파도 물러가고 봄이 오려는지 갯가의 버들가지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봄이 오기 전에 더 열심히 운동하여 만물이 싹을 틔우면 나도 내 농장에 작물들을 싹 틔워야지, 그러려면 더 많은 힘을 비 측 해야 늙은이라 비웃음을 당하지 않지 이런저런 욕심으로 오늘도 힘차게 3만 보를 채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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