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어온다. 내세가 있다더니 정말로 있는 것인가? 분명 나는 죽는다고 죽었는데 하면서 살며시 눈을 떠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나를 쳐다보며
“깨어났어.”
“박 선생 나 알아보겠어.” 소리가 들려온다. 눈을 돌려 바라보니 교감 선생님과 행정실장 그리고 나이가 지긋한 체육 선생님이 보인다. 나는 다시 눈을 감자 그들은 간호사를 부르며 의사를 모셔오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분명 오늘 아침 학교를 나가지 않고 두려움과 공포 속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에 누워 죽을까 말까 하는 갈등을 느끼고 있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들어보니 우리 학교 교감 선생님과 2학년 학년 부장 같았다.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에서 사용하는 식칼을 들고 내 침대에 걸터앉아 눈을 감고 왼손 동맥에 대고 잡아당겼다. 그리자 따끔함을 느끼는 순간 따뜻한 피가 내 얼굴에 튀기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밖에서
“박 선생. 박 선생.”
“문이 잠겼어.”
“주인아줌마 찾아와.” 하면서 방문 고리를 돌리는 소리와 조금 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왼 일이라, 열쇠가 없는데”
“신발이 있는 게 분명히 사람이 방에 있는데.” 당황스러워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문고리를 부숴, 망치 없어요.” 하자 누군가 뛰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정신이 몽롱해진다. 그러다 문고리를 부수는 망치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 뒤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그러고 조용이 속닥거리는 소리와 기도 소리가 들려 천국에 왔나 생각하며 눈을 떠보니 병실이었다. 내 죽음이 실패로 돌아간 모양이라 생각하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죽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 모양이다.
내 눈물을 보았는지 교감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눈물을 닦아 준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주는데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잡아주던 다정하면서도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는 사이 의사가 와서 고비를 넘겼으니 곧 회복될 거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주위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그리고 문밖에서
“교장 선생님 지금 막 깨어났어요.”
“의사 선생님 말씀이 고비를 넘겼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네요.” 하고 행정실장이 교장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의사는 환자가 안정을 취하며 쉬어야 한다고 걱정하지 말고 한 사람만 남고 돌아가라고 선생님들에게 말한다. 교감 선생님이 자기가 집에서 누가 올 때까지 옆에 있을 테니 실장과 체육 선생님은 학교로 먼저 가서 교장 선생님에게 자세히 보고 드리란다. 의사와 같이 그들이 나가자 교감 선생님이 눈을 감고 있는 나를 위하여 또 기도하는 소리가 들린다. 교감 선생님은 여자로 착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학교에서도 몇몇 선생님들을 모시고 기도를 하는 분으로 업무도 꼼꼼하며 모든 것을 솔선수범하여 처리하는 자상한 분이다.
얼마 있다 문소리가 나며
“이게 무슨 일이랴” 하며 놀란 엄마 목소리와
“명숙아.”라고 부르는 작은 언니 목소리가 들여 눈을 뜨자 엄마와 작은 언니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쾌나 놀랐나 옷차림이 집에서 입고 있는 허술한 모습 그대로 달려온 모양이다. 나는 세상이 싫은 듯 다시 눈을 감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내 삶에 대한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흐른다. 어머니와 언니가 오자 교감 선생님은 언니에게 잘 보살펴 주라 부탁한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아주면서 학교 걱정은 하지 말고 몸 관리 잘하라는 말을 남긴 다음 어머니께 인사하고 돌아간다. 교감 선생님이 돌아가자 눈을 감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와 언니의 잔소리가 한바탕 요란하다. 나는 못 들은 체 눈을 감고 있자 어머니도 제풀에 꺾였나 조용해졌다. 나는 눈을 뜨고 언니에게
“언니 미안해”
“나 괜찮으니까 어머니 모시고 돌아가”라고 말하자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고 있던 언니가“정말 괜찮겠어, 학교에서 아이들 올 시간이 돼 가는데”
“걱정하지 말고 돌아가” 라고 하자 엄마가 자기가 혼자 있을 테니 언니만 가라고 한다. 나는 조용히 쉬고 싶으니까 엄마도 가기를 재촉하자 간호사가
“이제는 괜찮으니 바쁘시면 돌아갔다가 저녁때 가벼운 옷가지와 이불을 준비해 오세요. 5일 정도 입원해야 하니까요” 한다. 나는
“5일이나 입원해요. 내일 나가고 싶은데”
“피를 많이 흘려 완전히 회복되려면 몇 주 걸려요. 퇴원하고도 집에서 잘 요양을 해야 하는데”하면서 나간다.
언니가 엄마와 같이 병실을 나간다. 내 주변에 사람이 없자 병실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누워 있는 병실은 여섯 사람이 사용하는 병실로 내 침대는 출입문 입구에 놓여 있었다. 다른 입원 환자들이 낮잠을 자는지 조용했다. 약 기운인지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긴다. 얼마나 잦나 혈액 주사와 영양제 주사 맞는 팔이 아파 눈을 떠 보니 병실 창밖이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몇 시간 푹 잔 모양이다. 옆을 바라보자 언제 왔는지 어머니가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왜 또 왔어.”
“네 옷과 이불 챙겨 왔자나”라고 말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는 사이 저녁밥이 들어온다. 밥맛이 없는 나는 어머니에게 드시라고 하자 그는 기어이 나보고 먹으란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고 하자 현기증이 일어난다. 피를 얼마나 흘렸는지 모르지만, 의사 선생님이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번했다고 선생님들과 어머니에게 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인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 주머니와 링거주사액이 결려 있는 설치대를 잡고 일어나 화장실에 가 가볍게 양치질을 하며 거울을 바라보니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그리고 가지 않겠다는 어머니에게 이제는 죽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며 억지로 돌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