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첫사랑은 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여자만 보면 마음이 설레는 것은 남자라면 누구나 같을 것이요 조금만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든지 또는 예쁘게 보이는 여자가 있으면 가슴이 설레는 것은 사춘기 남자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라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몸서리치게 그리워지는 사람이 나타나게 되고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헤어 젖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사람, 기회가 있으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첫사랑인 모양이다.
내가 그녀를 마지막 만난 것은 결혼 후 몇 개월쯤 되었을 때 만나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소식 한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녀와 사귀고 있을 때 내 나이 21살이고 그녀는 19살이었다. 서로 연애를 하면서 8년 후에 결혼하자고 약속한 아가씨인데 그녀와 헤어진 후 군대를 갔다 오고 늦게 대학을 다니다 보니 그녀와 만날 기회가 사라 젖으며 까마득하게 잃고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한 후 어느 날 부모가 사는 시골집을 가보니 그녀의 편지가 와 있었다. 한번 만나보자는 편지였다. 편지를 읽은 나는 코웃음을 치며 편지를 버렸다 다시 집으며 한 번 만나볼까 하는 생각이 든다. 8년이란 세월이 그녀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궁금하기도 하고 지난번 헤어질 때 괘씸한 생각이 떠올라 마음에 변화를 준 모양이다.
사실 나는 결혼한 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었다. 그리고 아직도 공부하는 신분이다 보니 여자에 대한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는데 이 여자는 한 번 만나 따져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나 보다. 결혼한 아내 모르게 편지에 적힌 장소로 나갔다. 대전역 앞 건너편에 있는 조그마한 찻집인 삿갓 다방이었다. 헤어진 지 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다방에 들어갔다. 옆 차를 가져다주는 아가씨에게 혹시 곽숙자라는 사람이 오지 안 했나 물어보니 잠깐 기다리란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먼저 왔다 갔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엽차를 한 모금 마시고 앉아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뚱뚱한 마담이 닦아 오는데 자세히 보니 만나자고 했던 그 사람이었다. 이 아가씨가 8년이란 세월 속에 다방의 마담 언니로 변한 모양이다. 반갑다는 표현보다 어이가 없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비록 결혼 약속은 지키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은 했지만, 마음속은 옛날같이 발랄하고 예쁜 사람이려니 생각하고 나왔는데 내 앞에 나타난 사람은 사회생활에 물든 중년의 다방 얼굴마담 있었다. 순간 머릿속에 잘못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로 서먹한 상태로 가볍게 차 한 잔 마시자 그녀는 저녁 식사나 하자며 주변 식당으로 안내한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면서 8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로 얼마나 변했는가만 확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녀는 나이가 30살이 다 되어가는 데 아직도 대학에 다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보였을 것이고 내 눈에 비친 그녀는 인생 막다른 골목에서 사는 것 같은 기분만 안겨 주었다. 두 사람이 사는 모습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별로 할 말도 없었다. 서로 헤어지게 된 8년 전 이야기만 간단히 주고받았다. 그녀는 나 때문에 자기가 그리된 것 같은 묘한 말을 하는데 나는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낄 행동을 한 적이 없고 그녀가 배신하여 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반가움을 표현하기보다는 서로 원망하는 대화만 간단하게 주고받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렇게 헤어진 후 두 번 다시 연락은 없었으나 간혹 연인이란 이야기만 나오면 머릿속에 이름이 맴돌곤 하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정말 나를 원망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이 여자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된다. 어느 여름 토요일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가씨 세 명이 반대쪽에서 오고 있었다. 우리 집은 학교에서 새로 난 신작로를 따라 1.5km 정도 떨어진 읍이지만 외곽에 있는 시골 마을이다. 한쪽은 논이고 다른 쪽은 냇가가 있는 방천 둑에 신작로를 낸 것이다. 아가씨들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껄껄대며 내 앞을 지나친다. 덩치는 크지만, 여자를 모르는 나는 수줍음이 많아 아가씨 앞을 혼자 지나가는 것이 무척 부담스러웠다. 껄껄거리며 오고 있던 아가씨 중 한 사람은 우리 앞집에 사는 2살 아래인 사람인데 초등학교 5년 후배라 어린애로 취급하고 이야기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사이였다. 그리고 소문에 의하면 좀 먹고 살만하다고 멋이나 부리고 까불며 행실이 바르지 않은 아가씨란 소문이 있었다. 아마 그녀 친구들이 놀러 왔다 가는데 바르다 주는 모양이라 생각하면서 모른 체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들은 무엇이 그리 웃기는지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배꼽을 잡으며 낄낄대고 지나간다. 나는 순간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나 후끈거렸다.
그날 오후 6시쯤 되었을까? 아래 집에서 시시덕거리는 여자들 웃음소리가 나더니 한 아가씨가 장난 석인 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내 녀석이 나이도 어린 계집애들에게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당히 맞서야겠다는 생각에 싸리문 밖으로 나와 담장 너머로 내려다보니 얼굴이 예쁘장하면서 깜찍하게 생긴 아가씨가 넉살 좋게 웃으며 장난기 석인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것이다.
“권동복?”
“권동복?” 하고 제법 큰 소리로 부른다.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똑바로 바라보며 어린 것들이 까분다는 생각을 하면서
“왜 불러” 했더니
“그냥 불러 봤는데.” 하며 조금도 미안한 표정이 없었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너한테 관심이 있다는 표정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 방으로 들어왔다. 이렇게 해서 알게 된 아가씨가 곽숙자라는 여자다. 이 아가씨의 이름과 사는 곳은 앞집 아가씨와 친척인 옆집에 사는 친구가 알려 줘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나와 사귀고 싶어 한다는 말도 전해 줬다. 그러나 나는 내 주변에 어머니 외에는 여자가 없어 여자들 대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답변을 하지 않고 있었다.
옆집 친구 말에 의하면 이 아가씨는 쾌 개구쟁이로 그녀가 사귀고 있는 남학생이 있는데 대전에서 상업고등학교 졸업한 박상현이란다. 상현이 나이는 나와 같았으나 중학교 2년 후배로 가정이 넉넉하여 중학교는 금산에서 다니고 대전으로 고등학교를 진학했단다. 내가 그를 알고 있는 것은 고등학교 1학년을 다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그만두었다가 2년 후배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다 보니 내 친구 중에 중학교 때 상현이 친구가 있어 이름을 알게 된 것이다. 금산이란 군 단위에서 학교에 다니는 우리들은 가정형편이 좋아 고등학교 진학을 대전으로 한 학생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대전에서 학교에 다니는 애들은 우리를 시골 촌놈들이라고 깔보며 거드름을 피워 대부분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이 가난하여 대학에 원서조차 내보지 못하고 집에서 부모님 일손을 도우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우리 마을에 꿀벌 4-H라는 것을 조직하고 더 나아가 금산읍 4-H 연합회를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농촌지도소 소장과 가까이 지냈었다. 그 인연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있는 나를 농촌지도소 소장님의 추천으로 3월부터 군청 산림계 임시직원으로 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큰 집을 다녀오다 그녀가 사는 산골 마을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큰 집은 주천면 용덕리라는 곳으로 그곳에서 걸어서 우리 집을 빠르게 오려면 산길로 남이면 하금리를 지나면 4km는 단축된다. 그래서 아버지와 큰집에 다녀올 때 큰 고개를 두 개씩이나 넘어 다니곤 했던 길이였다. 이 길목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인 일명 600고지라고 하는 백암산 자락에 이 아가씨가 사는 역들이란 마을이 있다.
날씨가 따뜻한 5월 토요일로 기억된다. 오후 2시쯤 큰 산을 하나 넘어서 남이면 대양리에서 하금리로 가는 길목을 지나다 무슨 마음에 변화가 생겼나 그녀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금리로 향하던 발걸음을 역평리 쪽으로 가는데 중학교 1학년 남학생 3명이 학교에서 끝나고 집으로 가는지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치면서 걷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불러 어데 사냐고 물어보니까 역평리 산다고 한다. 반가워하면서 그럼 그 동네에 사는 곽숙자라는 사람 아냐고 물었더니 한 녀석이 제 친구를 가르치며
"애 누난데요" 한다. 그 녀석을 바라보니 귀엽게 생겼다.
"그래“
“너 참 잘 생겼구나. 네 이름이 뭐니?
“명식인데요.” 한다.
“명식이, 이름이 참 예쁘구나.”
“누나 집에 있니?" 하자 이 녀석 쾌나 개구쟁이인 모양이다.
"누구세요. 누나 남자 친구는 내가 다 아는데" 하며 이름을 대란다. 나는 웃으며
"내 이름은 모를 거야." 하자
"김영수, 아니면 박상현" 하며 몇 사람 이름을 대는데 내가 아는 이름도 두 명이나 있었다. 쾌나 깡그리고 쏘다니는 모양이다. 그 두 명 모두 대전에서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내 또래들이다.
"너 동석이란 이름 들어 봤어?" 하니
"아니요. 처음 듣는데." 한다. 나는 요 녀석을 내 편으로 만들었다.
“누나 좀 불러줄 수 있니?”
“지금은 안 되고 이따 어두워지면 불러 줄게요.”
이 녀석 하는 이야기가 저희 누나를 낮에는 사람들이 보니까 저녁에 불러준다면서 자기들 낚시 가는데 같이 가잔다. 참 재미있는 남매구나 생각하면서 한편으로 남자들이 종종 찾아오는 바람둥이 아가씨라는 느낌이 든다. 그가 가방을 가져다 놓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를 하나씩 가지고 나왔다. 나는 호기심이 생겨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에서 낚시하는데 구경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어둑어둑해지자 마을로 내려왔다.
그가 집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돌담을 넘어 보리밭 사이로 아가씨가 뛰어나왔다. 참 겁도 없는 아가씨인 모양이다. 나를 보자마자 지금 저녁 식사 시간이니 자기 집으로 가잔다. 그러면서 나를 작은오빠 친구라고 하라면서 군대에 가 있다는 오빠 이름을 가르쳐 주고 싸리문을 열고 들어가 버린다. 나는 용기를 내어 싸리문을 열고 큰기침을 하며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내가 말을 걸기도 전에
"아버지 작은 오빠 친구가 왔네요." 하며 반가운 듯 맞혀 준다. 그녀 부모도 군대에 가 있는 작은 아들 친구라니 별로 의심을 하지 않고 방으로 불러들여 밥을 먹고 가라며 밥을 내오게 한다. 이 아가씨가 미리 내 밥을 준비해나 모르지만, 그녀 아버지와 같이 점상을 하고 식사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마음이 넉넉한 분들 같았다. 군대에 간 아들 친구라는 말에 반가워서 그런지 아니면 자기 딸이 거짓말을 하는 줄 알면서 모르는 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한다. 몇 살 먹었느냐, 무엇을 하느냐, 어데 사느냐 등 물어보는데 나는 사실 그대로 또박또박 답변했다. 나이는 21살이고 집은 음지리이며 지금 하는 일은 군청 산림계 직원이라고 대답했다. 대답하면서 혹시 들통이 날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밥을 다 먹었을 때 자기 아들을 어떻게 아냐고 물어 오는데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 아가씨가 먼저 나서
"오빠 중학교 동창생이에요." 한다. 나는 아무래도 들통이 날 것 같아 밥을 먹자마자 가보겠다고 일어서자 그들도 같이 일어나 마당까지 나와 배웅 한다.
부모님께 인사를 하고 싸리문을 나서자 그녀는 마을 입구까지만 나왔다 들어가야 한다며 가 버린다. 데이트 좀 하고 싶어 왔는데 아쉬웠다. 내가 생각해 봐도 들어가는 것이 부모님에게 누가 될 것 같아 같이 있자고 강요하지 못하고 들여보낸 것이다.
혼자 사람이 없는 산골짝 시골길을 걸으려니 무서움이 엄습해 왔다. 분명 그 집을 들어갈 때는 밝은 보름달이 떠 있었다. 처음에는 아가씨 부모로부터 들키지 않고 저녁 대접까지 받는 황홀함과 불안감에 어두움을 알지 못했는데 혼자 조금 걷다 보니 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하늘에 별들이 초롱초롱한데 달이 보이지 안 했다.
그녀의 마을에서 우리 집까지는 장장 12km가 넘으며 해발 700m가 되는 진악산에 있는 수리미재를 넘어야 했다. 시골에서 자라 겁은 없다고 하지만 달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밤중에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으며 마을과 마을 사이가 2km가 넘게 떨어진 낯선 산골짝 신작로 길을 걷는데 긴장감으로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걷고 또 걸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저녁 식사 대접을 받으면서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지 아니면 혹시나 했던 예쁜 아가씨를 만난 기쁨에서인지 콧노래가 나왔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낫 설은 깜깜한 산골 밤길이 공포감으로 엄습해 왔다.
그래도 처음에는 드문드문 마을이 나타났는데 반쯤 가니 장꾼이나 나무꾼들만 사용하는 산골짝 길로 접어드는데 하늘에서 조각달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때야 오늘 개기월식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월식에서 벗어난 보름달이 두둥실 밝게 비처 길은 잘 보여서 좋았지만 무서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바위나 나무가 밝은 달빛을 받아 커다란 괴물이나 짐승 같은 형체로 보이기도 하고 하얀 돌덩이는 꼭 귀신같이 보이기도 했다. 더구나 길은 돌덩이로 가득 차 마음 놓고 빨리 걸을 수도 없었다. 이렇게 험한 자갈길로 된 작은 재와 수리미재라고 하는 고갯길을 4km나 걸어야 했다. 처음은 양손에 제법 묵직한 돌덩이를 하나씩 들고 걷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버리고 인삼밭에서 몽둥이를 하나 구하여 들고 걸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피할 수 없는 길이라 그저 앞만 보고 걷고 또 걸은 것이다. 연애도 좋지만, 어른께 거짓말한 죗값을 톡톡히 받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공포 속에 집에 오니 옷은 흠 북 젖어 있고 시간은 자정이 지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