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아들 1부(학춤 1)

일릉 2020. 1. 17. 09:18

덩더~쿵 덩더~쿵 마음에서 울려오는 장단소리에 오른발 왼발이 사뿐 사뿐 오르내리며 하얀 도포자락이 두 팔을 움직일 때마다 땅에 달 듯 말듯 허공을 가른다. 무슨 한이 그리 많은지 으슥한 가을밤 자정시간에 혼자서 조그마한 시골 학교 운동장을 무대로 삼아 너울너울 춤을 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쉴 줄도 모르고 돌고 또 돌면서 긴 한숨을 몰아쉬며 춤을 춘다.

이 이야기는  내 나이 40대 후반 안면도에 있는 어느 시골 중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있었던 일이다. 학교 교문 앞에 있는 관사에 살고 있던 나는 오후에 학교가 끝나자 옆방에 살고 있는 안과장과 박과장 두 사람과 같이 인근에 있는 삼봉 해수욕장에 나가 자취생들의 서글픔을 달래려 저녁 겸 술 한 잔 마시러 갔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안과장과 박과장도 왼 일인지 오늘은 몇 잔 씩 마신다. 술이 얼큰해 지자 가을밤 적막한 바다에서 들여오는 파도 소리에 발길을 백사장으로 돌렸다. 평소 술을 좋아하는 나는 마른 오징어와 소주 두 병을 사가지고 모래밭으로 나갔다.

세 사람이 모래밭에 앉아 철석이며 끝없이 몰려왔다 몰려가는 밤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안 과장이

파도 소리를 들으니 어렸을 적 인천 앞바다 생각이 나네.” 한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박 과장이

왼 인천?”

~, 어렸을 때 인천에서 살았거든옆에 있던 나도

그런데 어떻게 충남에 왔어

사실은 1·4 후퇴 때 해주에서 인천으로 피난 나왔다 다시 대전으로 왔거든

해주에서 태어 낫 내.”

그럼 실향민이네?” 하며 우리는 안과장의 어린 시절과 가정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그럼, 지금도 인천에 누가 살아?”

, 큰 형이 인천에 살고 있어

대전에서는 어떻게 살게 되었는데

“1·4후퇴 때 가족이 인천으로 피난을 왔는데 큰형은 한의사로 그의 가족과 함께 인천에다 자리를 잡고 아버지는 나머지 가족을 데리고 유성에 와서 살다보니 충청도 사람이 된 것이지 뭐

그럼 다른 형제는 없고?”

아니 작은 형이 있는데 그는 지금 유성에 살아한다.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세 사람의 신세타령으로 변한 것이다. 안 과장은 해방둥이로 황해도 해주에서 한의원 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단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1·4 후퇴 때 조그마한 고기 배를 타고 가족이 인천으로 피난 왔단다. 피난 나와서 처음에는 인천에 정착하려 했는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인지 큰형만 인천에 놔두고 대전으로 내려와 유성에다 한의원을 개원 했단다. 그리고 둘째형은 아버지 가업을 이어 받아 한의사가 되었고 자기는 교사가 되었단다. 그가 교사가 되어 첫 발령을 받은 곳이 서산시에 있는 시골 중학교로 받아 근무하다 그 곳 하숙집 딸과 결혼하고 살다 대전과 충남이 분리되자 대전으로 가지 못하고 천안에다 생활터전을 잡게 되었단다. 그리고 사모님이 생활욕이 강해 천안에서 요식업을 했는데 한동안 장사가 잘 되어 근심 걱정 없이 살다 갑자기 자기 집에 불행이 닥친 것이란다.

그는 아들만 형제를 두었단다. 큰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이고 작은 아들은 중학교 2학년으로 공부도 잘하고 착한 아이들 이었는데 어느 날 겨울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하루아침에 아들 둘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 후 늦게 낳은 아이들은 딸로 자매를 두었다. 그러다 보니 딸 둘이 모두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는 어린애들인데 딸만 두자 부인이 아이들의 장래에 대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이 아이들이 커서 결혼할 때쯤이면 자기들은 늙은이로 변해 있을 것인데 딸들의 혼사 길이 제대로 열릴지 걱정을 한단다. 이런 와 중에 서산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선생님들과 부부 동반 모임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태안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단다. 어느 날 부인과 같이 모임에 참석했는데 교감 선생님이 부인의 이야기를 듣고

안 과장, 혹시 안과장이 승진하여 교장이 되면 아이들 결혼에 유리하지 않을까?” 하자,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이구동성으로

그렀네요. 중등학교 교장 딸은 아직 혼사에 유리하자나요.”라고 말을 했단다.

모임에서 돌아 온 후 사모님은

당신도 승진 하세요라고 졸라 지금까지 승진에 대한 생각을 해 보지 않고 살았는데 집사람 성화를 이기지 못해 도서벽지인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란다. 나는 그 때서 안 과장의 마음을 이해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평소 다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학교 수업만 끝나면 몇 몇 학생들을 데리고 전국학생과학경진대회에 출품할 작품 만드는데 정신이 없었다. 지남 해에도 태안 해구에 서식하는 곤충을 채집하여 작품을 만들어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일도 있고 금년에도 여전히 작품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 경진대회에 학생들을 입상 시키면 학생 지도 교사에게 입상 등급에 따라 승진 가산점이 부여되기 때문에 과학 선생님들이 열심히 지도하는 경진대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직원들이 자기 승진만을 위하여 몇 학생들만 지도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관심이 없다고 흉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그가 나를 자기 방으로 초대하여 가서 보니 그는 책상 앞 벽에 자기의 인생 목표인지 커다란 글씨로 10 이란 표어를 붙처 놓았다. 나는 궁금하여 이게 무엇이냐고 물어 볼까 하다가 실례가 될 것 같아 참으면서 10억이란 돈을 모으는 것이 꿈인 모양이구나 하며 웃은 적이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집념이 강한 선생님이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밤바다의 파도를 바라보며 이야기 하던 안 과장은 박 과장을 보고

당신은 왜 여기까지 왔어한다. 박 과장은 안과장 보다 한 살 위로 성품이 온순하고 과목도 농업으로 조용한 사람이었다. 그는 당진 합덕 사람으로 교직의 대부분을 당진에서 보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사모님이 당신도 승진하라고 성화를 대어 할 수없이 도서벽지 점수가 있는 태안군으로 왔단다. 태안군에 처음 왔을 때는 만리포 중학교에 근무하다 지난 3월에 우리 학교로 온 것이란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 우리 학교 교감 선생이 만리포 중학교에 근무할 때 교무 과장을 지낸 사람으로 교감 선생이 오라고 해서 온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왕이면 태안에 왔으니 도서벽지 학교에서 근무하면 좀 유리할 것 같아서 왔지그러자 안 과장이

교감 선생님이 오라고 해서 온 것이 아니고?”

, 꼭 그런 건만은 아니고하면서 말을 회피하며 나를 바라보며 말을 걸어온다.

김 과장은 왜 여기까지 왔어

, 사연이 많은 사람이야하며 술김인지 말이 슬슬 풀려 나온다.

나는 집에서 피신 나온 건데?”

승진 때문에 온 것이 아니고?”

어쩌다 보니까 늦둥이 아들을 하나 뒀는데 이 녀석이 장애인이자나

언 듯 이야기는 들었는데 심각한 거야

심각한 게 아니라 답이 없는 거지 뭐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취해서 그런지 가슴이 답답하며 목이 매어온다. 그러면서 술잔을 들이키고 끝임 없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를 바라본다.

아들 이야기에 마음이 울적해 젖는지 안과장이

그만 들어가지원래 안 과장은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며 술도 하지 않는데 오늘은 자기 가정 이야기까지 했으니 마음이 울적 했던 모양이다.

그럴까?” 박 과장이 대답한다. 박 과장도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나 그는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 술이 한 병이나 남았는데하자 안 과장이

그건 김 과장이 집에 가져가서 마셔하며 갈 준비를 한다.

그럼 두 사람은 먼저 들어 가. 나는 밤바람을 더 쐬며 마저 마시고 갈게한다. 사실은 나도 아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이 울적하여 그냥 들어 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안 과장은 알았다며 일어서고 박 과장은 내가 안쓰러운지 조금 있다 가겠다며 나에게 술을 따라 준다. 나는 술을 받으면서

박 과장도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하면서 들어가기를 권하자

이것만 마시고 가지 머하면서 내 옆에 앉아 남아있는 술병 마개를 따서 나에게 한 컵을 가득 따라 준다. 이 것을 보고 있던 안 과장은

그럼 두 사람은 이따 와하면서 먼저 간다.

사실 안 과장과 박 과장은 사이가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이 학교는 정식 과장 자리가 교무 과장 한 자리뿐인데 그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있으며 두 사람은 내가 떠난 후 그 자리를 서로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가 하면 교원 승진제도에서는 근무평정이 절대적인 요건 중에 하나인데 우리 학교같이 작은 학교는 일등 수가 아니면 승진할 수가 없어 승진에 가까운 두 사람은 서로 견제하지 않을 수 없는 사이였다. 다만 나이를 먹은 사람들이라 평소 노련하게 감추며 서로를 경계하면서 근무하고 있을 뿐이다.

박 과장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그는 아까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김 과장 아들은 무엇이 문제야?”

우리 아들, 혹시 옛날에 학교 다닐 때 배운 염색체 이상이란 것 기억나

그게 안면도에 자생하는 춘란 중에 변이 종 같은 것 아닌가사실 안면도에는 춘란이 많이 서식한다. 그러다 보니 간혹 춘란 중에 변이 종을 찾기 위하여 몰래 산에 들어가 춘란을 캐가다 벌금을 물기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 과장은 제대로 알고 있네.”

내 기억은 돌연변이라고 배운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구먼.”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하며 물어 온다. 그러다 보니 내 가슴 속에 싸여 있는 아들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내 나이 45 살 때 태어난 아들인데 집 사람 나이가 43 살로 산모 나이가 많다 보니까 불행을 초래 한 것이다. 나는 딸만 셋을 키우고 있었다. 모두 예쁘고 착하며 공부도 곧 잘 했다. 큰아이는 고등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중학교 2학년에다 막내딸이 초등학교 6학년 인데 늦게 아들을 둔 것이다.

나와 집사람은 농부 집 아들·딸로 나는 8남매 맡이고 집사람은 7남매 맡이 끼리 만나 결혼을 한 것이다. 그런데 큰 아들이 딸만 셋이나 두자 장모님이 딸에게 아들 하나를 더 나라고 자꾸 졸랐으며, 집 사람도 시어머니 눈치가 보였는지 아들 하나 두기를 원했다. 내 마음 속도 아들 하나 두는 것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때 시대상황이 아들을 선호하던 시절이라 남자들이 술좌석에서 술이 조금만 건아해도 딸만 둔 사람을 슬슬 놀리는 것을 재미로 삼던 시절이다.

김 선생 안타 한 번 못 때려, 그래 쓰리 포볼이 뭐야하면 나는

안타처서 일루 나가나 포볼로 일루 나가나 뭐가 다른데라고 응수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은 좋지 안했다. 하긴 셋째가 태어난 날이 1024UN의 날로 공휴일 이였다. 새벽 세 시에 아이가 태어 낳는데 오전 11 시에 있는 동료 교사 결혼식을 참석하려니 셋째 딸 낳은 것이 꼭 죄인 같은 기분이 들어 남의 경사 자리인 결혼식에 방금 딸을 낳은 사람이 죄인 같다는 생각이 들어 참석을 포기한 것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아들 중심 사회로 딸만 가진 사람은 결혼식 주례도 거절하는 사회였다.

이런 사회다 보니 결혼하면 아들을 두기 위하여 돈 좀 있는 사람은 태아 성별 검사를 하여 딸이면 낙태를 하고 아들이면 낳는 기이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아들과 딸의 성비가 맞지 않아 뒤에 결혼 풍토가 변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지금까지 결혼은 남자가 서너 살 더 많았는데 이제는 여자보다 남자가 많다 보니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는 시대로 변한 것이다. 이런 사회에 사는 딸 셋의 부모는 부모나 조상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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