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열심히 산 것 같다. 새벽 운동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주간 보호센터에 아들을 보낸 후 농장에 나가 밭에 있는 무가 추위에 바람이 들까 봐 뽑아서 하우스 안에다 들여 놓았다. 그러고 나서 무엇을 더 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여보, 지금 바빠요.”
“지금 막 무를 다 하우스 안에 들여 놓았는데, 왜요”
“아니 시간 있으면 올 때 경찰서 좀 들여서 올래요.”
“그러지 머” 하면서 전화를 끊는다. 나는 하던 일을 대충 맡치고 시계를 보니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빨리 가면 점심 식사 전에 경찰서에서 일을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이 나에게 경찰서를 다녀오라고 한 것은 지난 주 일요일 새벽에 우리 집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었다. 그날 나는 평상시와 같이 새벽 네 시에 아침 운동을 하려 나가 여섯시에 집에 들어 와 보니 집 식구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이 나에게 말도 없이 아침 운동을 나갔나 생각하며 주방에 들여 물을 한 잔 마시는 데 왼지 기분이 찝찝하였다. 그래서 아들은 혼자 방에서 자고 있겠지 생각하며 아들이 자는 방문을 열어 보니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안방에 가서 자고 있나 안방을 들어가 봐도 보이지 안했다.
평소 우리 집은 아들이 집에 있으면 나나 집사람 중 한 사람은 집에 있었다. 아들이 1급 정신발달장애인이라 혼자 둘 수 없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년 전 여름 어느 날인가 아들이 늦잠을 자 길래 두 사람 모두 새벽 운동을 나갔다 집에 돌아 와 보니 이 녀석이 잠옷 바람으로 없어져 한바탕 날 리가 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용케도 멀리 가지 않고 제가 자주 다니는 길목 아파트 놀이 공원에 있어 쉽게 찾았으나 놀래어 앞으로는 절대 혼자 두지 말자며 교대로 아이를 돌보아 온 것이다. 나는 그렀기 때문에 당연히 저희 엄마와 같이 새벽 운동을 나간 것으로 착가하여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아침밥을 준비하고 있었다.
한 시간 쯤 지나자 대문 소리가 나 당연히 두 사람이 같이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집사람 혼자 들어온다. 나는 의아심을 가지며
“섭이는 왜 안 들어 와”라고 물었다. 간혹 이 녀석이 안 들어오고 밖에서 고집을 부릴 때가 있어 오늘도 그러려니 생각한 것이다. 그러자 집사람은
“섭이가 어데 갔는데?”
“같이 안 나갔어, 집에 없는데” 하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말을 하면서 문제가 생겼나 보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감싼다. 식구도 놀라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이 녀석 혼자 자고 있었는데?” 하며 벗던 옷을 되 집어 입으며
“걱정 하지 마, 제가 늘 가는 곳 어딘가 앉아 있을 테니까?” 하면서 나간다. 나도 옷을 주어 입고 대문을 나가면서 식구에게 전화를 건다.
“어떤 쪽으로 가고 있어”
“응 나는 동쪽으로 평소 나랑 다니던 롯데마트와 노래방 있는 곳으로 가는데 너무 걱정 하지 마, 근방 찾을 거야” 하며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목소리다. 집사람은 종종 겪었던 일이라 대소릅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새벽 날씨도 초겨울이라 추워지고 있었고 옷도 제대로 입지 않고 잠옷 바람으로 나갔을 참인데 얼마나 추우며 혹시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 젖다. 그래서 나는 혹시 내 차가 있는 곳을 같나 생각하며 먼저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돌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혹시 새벽이니 종종 엄마와 아빠가 새벽에 다니는 산책길로 나갓나 싶어 천변 길로 나가려는데 집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찾았나 싶어 반갑게 전화를 받아 보니
“섭이가 보이지 않네. 평소 다니는 롯데마트 근방과 노래방 부근을 다 보았는데?” 하며 다급한 목소리가 들여온다. 그러면서
“경찰 지구대에 신고할까?” 하고 물어 와
“그래요. 신고부터 하고 찾아보지” 해서 집사람이 지구대에 신고를 하고 아파트 경비실에 들여 경비 아저씨에게 이야기 하자 경비 아저씨는 아이가 새벽 여섯시에 제가 평소 저희 엄마랑 자주 다니는 아파트 후문 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휴일에 산책을 갈 때 간혹 사용하는 앞쪽 문 쪽으로 가는 것을 봤단다. 시간상으로 볼 때 내가 들어오기 직전에 나간 모양이다. 우리 두 사람은 몸에 힘이 쭉 빠진 채로 아이가 제 엄마랑 간혹 다니는 천변 산책로를 따라 서로 헤어져 찾아 해매고 있었다. 근 한 시간을 헤매도 아이는 보이지 안했다. 그러다 보니 늙은이들이 추운 초겨울에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들어 와서 10시가 가깝도록 헤매고 다녔으니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허기진 모습으로 맥이 탁 풀어진 채 집사람이 집에 가서 기다려 보자는 말에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 30살이나 된 녀석이 제 집주소도 모르고 전화번호는 그만두고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니 이 추운 날씨에 지금 어데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메어지는 것 같다.
어릴 때는 어쩌다 혼자 집을 나가 헤매고 있으면 어린 아이라고 사람들이 지구대에 연결 시켜 줘 쉽게 찾곤 했는데 이제는 덩치도 커 젖으니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이라 거리에 사라들도 눈에 잘 띠지 않을뿐더러, 제가 잘 가는 대형마트도 오늘은 문을 열지 않는 날이라 갈 곳이 없을 것 같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집사람은 다 죽어가는 모습에 한이 서린 목소리로
“여보, 걱정하지 마, 사람들이 지구대에 신고해 돌아 올 테니까?” 하는데 처량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온 몸에 맥이 하나도 없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을 때까지 이 짐을 지고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이 아이를 키우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얼마나 했는가.
그런가 하면 이 아이가 나보다 먼저 죽어 줬으면 하는 생각도 수없이 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만약 죽고 나면 이 아이를 집사람 혼자 보살펴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또 집사람이 없으면 나 혼자 이 아이를 데리고 살 자신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런가하면 우리 두 부부가 죽게 된다면 누가 이 아이의 까다로운 비위를 맞춰 줄 것이며 보살펴 줄 것인가? 영화에서도 보지 안했나? 외국 영화인 「제 8요일」이란 영화를 보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정신발달 장애인이 어머니가 돌아가자 어머니를 찾겠다고 헤매다가 죽어가는 모습을 내, 어찌 잊을 것인가.
또 국산 영화인 「마라톤」이란 영화 속에서 자폐 아이와 그 어머니가 살면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 눈에 아른 거린다. 내 아이는 이 두 영화의 주인공보다도 더 장애가 심한 아이인데 우리 부부가 죽고 난 후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살다 죽을지 생각만 하면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모든 것은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시간에 맡겨야지 하면서 마음을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 부부인데 오늘 순간의 판단 실수로 문제가 일어난 것이다.
내가 직장에서 정년퇴직 후 매일 하는 일과는 아침 운동에서 돌아오면 태어날 때부터 고집이 세다는 다운증후군 아이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살며시 그의 방으로 들어가 반응을 살피며“아들 사랑해.” 하며 양팔을 벌리면 그도 양팔을 벌리며 “사랑해” 한다. 둘이 서로 껴안고 등을 다독 그려 준 다음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노래 틀어 줄까?” 하면 저도 따라서 “노래 틀어 줄까?” 한다. 지능이 낮아 대화가 되지 않고 내가 한 말을 앵무새 같이 따라서 하는 것이 내 아들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노래를 틀어 주고 우유를 한 컵 가져다 준 다음 노랫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면 아침 식탁으로 데리고 나와 밥을 먹인다. 그리고 양치질을 해 주고 세수를 시킨 다음 아들을 위한 활동보조인이 도착하면 옷을 입혀 주간 보호센터에 보낸다. 그리고 오후 네 시 반이면 꼭 집에서 이 아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씻겨주고 간식을 챙겨 준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씩 사워를 시키고 수시로 머리를 감겨 주며 보살피는 아들인데 오늘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는 줄 알고 저희 엄마가 순간의 착각으로 일이 버러진 것이다.
집에 돌아 와 베란다 창문에 기대어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잊자니 지난날들이 하나의 영상같이 지난 간다.
나는 이 아이가 태어난 후 혼자 집을 도피해 안면도라는 섬에서 3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다. 그때 어쩌다 술 한 잔 마시면 혼자 해변 모래밭을 거닐며 죄 없는 바다에 대고 목청껏 울부짖으며 마음을 달래기도 했고 어느 날인가는 보름달이 훤한 한 밤중 술에 취한 것인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것인지 시골의 자그마한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중학교 운동장에서 학춤을 춘답시고 밤이 이슥하도록 뱅글뱅글 돌은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찾아보겠다고 방학만 되면 대구에 있는 대구대학에 내려가 특수교육에 관한 연수를 수차례나 개인 비용으로 교육을 받아도 봤다. 그러나 여기서 얻은 것은 우리나라도 특수교육에 관한 법률이 나타나 서양의 선진국 같이 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로 변해 갈 것이라는 이야기와 특수교육 유치원은 누구나 설립만 하면 국가에서 모든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 주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에 대한 학교 교육은 통합교육 형태로 변해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교사들을 위한 교육이라 그런지 학교에서 장애인 학생이나 부모를 대할 때 필요한 내용이라 장애인 아이를 둔 부모에게는 별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이 없고 오히려 가슴만 더 아프게 했다. 여기서 교육 받으며 들은 내용 중 내 가슴에 못을 박은 이야기는 다운 증후군 아이 중 지능이 아주 낮은 아이는 대화가 되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앵무새 같이 따라서 한다고 했는데 바로 내 아이가 그런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와중에 집사람은 장애아들을 늦게까지 잘 보살피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주중이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집을 비웠다. 그리고 매월 첫 번째 일요일이면 마음을 달래겠다고 산악회에 가입하여 새벽 5시에 나가 저녁 10시나 되어야 들어 왔다. 그러다 보니 이런 때 아이는 내가 돌 봐야 했다. 일반 아이들 같으면 같이 놀아 줄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제한적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