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딸아이

일릉 2018. 3. 5. 22:15


신기한 녀석이다. 계집애면 계집애다워야지 원 선머슴애도 아니고 꼭 사내 녀석 같으니 알 수가 없다. 내 집 큰딸 아이 이야기이다. 일 년에 단 한 번인 구정 명절인데 베트남 호찌민에 살면서 방학 중인데도 저희 서방과 아이들만 보내고 저는 나타나지 않아 친정 아비로서 사둔네에게 딸 교육 잘못 시켰다 욕먹을까 봐 걱정하며 버릇없는 녀석이라고 속으로 욕을 하면서 다음에 만나면 단단히 혼내 줘야지 하고 있는데 카톡에 사진이 날아들어 온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아프리카의 KILIMANJARO 정상이 아닌가. 겁도 없다. 평소 산을 타는 녀석도 아닌데 그곳이 어느 곳이라고 해발 5,895m를 오르다니 대견하기도 하고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긴 2년 전에는 저희 아비 칠순 기념을 해 준답시고 히말리아 등반에 초대되어 두 사람이 같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해발 4,130m)를 등산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자기 친구 한 사람과 그의 남동생하고 세 사람이 등반했단다. 등반하는 도중 친구와 그 동생은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중도에서 멈추었다는데 고집스레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는데도 끝까지 정상을 정복했단다.


누구를 달마서 그런지 모르겠다. 평소 테니스를 좋아하여 저희 서방이 들어있는 클럽에 같이 가입하여 클럽 회원들끼리 대회를 하는데 1등을 제 서방에게 빼앗겼다고 뚜덜대는 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어 했는데 알만하다. 하긴 운동을 테니스뿐이 아니라 검도도 유단자라니 더 할 말은 없다.


어려서부터 강하게는 키운다고 키웠는데 너무 강하게 키운 모양이다. 강하고 정직하고 똑바르면서 영어에 능통 하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신경을 쓰면서 교육 한 것은 사실이나 나이가 먹으면서 저희 아비는 완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사는 녀석이 되어 버렸다.


원래 어려서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하여 초등학교 1학년 때에는 전교에서 1등도 하고 학생회 간부는 물론 고등학교 3학년까지 반장이나 부반장은 도맡아서 했으니 제 딴에는 노력하면서 살았다고 할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녀석이었는데 그 아이 고등학교 2학년 말경에 딸 셋인 우리 집에 늦둥이 아들이 태어났다. 그런데 그 귀한 늦둥이 아들이 정신발달지체장애인이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들은 처음 들어보는 다운증후군(염색체 이상인 돌연변이)이란 말에 반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가 되다 보니 한 참 공부를 해야 하는 고3, 중3, 중1 아이들에게 보살펴 줄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나는 40대 중반의 나이로 학교라는 직장에서 부장이란 직책과 3학년 선임반 담임에다 학교장이 맡은 도 단위 ㅇㅇ 연구회라는 조직에 총무부장을 맡아 정신이 없었다. 수업은 정규수업 및 보충수업까지 주당 30시간에다 도 교육청은 물론 각 시군 지회와 전국단위 회의나 세미나 참석으로 정신이 없었다. 아빠는 직장에 정신없고 엄마는 장애 아이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한 참 예민한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딸들에게 신경을 써줄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이 하향 곡선을 긋고 큰 녀석은 공부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치중한 모양인데 아빠인 나는 그 사실을 학년 말에서나 알게 된 것이다.


학교 선생으로 동아리 활동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건전한 동아리 활동을 권장하는 것이 교사들의 일이지만 그 활동을 정도껏 해야지 도를 넘어 학교 공부를 포기하면서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큰 녀석은 연극 동아리에 문학 동하리 등 좀 도가 지나친 모양이었다. 학년 말에 대학을 진학하려니 하위권 대학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 젖다. 그러나 어쩌라! 이미 없지러진 물인데 쓸어 담을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그의 끼를 살려 주겠다고 4년제 대학을 포기하고 해외여행이나 다니면서 살라고 전문대학의 관광영어과로 진학을 시켰다. 아비가 영어를 못하여 받은 서러움을 없애 주려고 일찍부터 영어교육을 강조해 줬기에 영어는 제법 잘하고 있었다. 그러나 팔자인지 3년짜리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가서 취업한 후 몇 달인가 버티더니 다시 대학을 가겠다고 집어 처 버린다. 아마 저랑 친하게 지내던 중고 친구들은 다 일류 대학을 다니는 것이 부러웠나 다시 대학을 진학한다고 해서 다시 공부하여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그 후 중등 영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하더니 영어 교사 몇 년 하다 걷어 버리고 베트남 호찌민에서 영어 학원을 하는데 톡톡히 재미를 붙이고 있는 모양이다. 제 서방은 같은 영문과 출신으로 일본인이 설립한 중소기업에 취직하여 호찌민에 있는 지점에서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심심하면 아이들과 해외 나들이를 즐기며 사는 것은 멋있게 보이나 아이들 공부는 뒷전인 것 같아 나에게는 별로 신뢰를 얻지 못하는 녀석이다.


그나저나 신기한 녀석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툭하면 남학생 아이들을 때려 울리고 4학년 때는 강원도 속초에서 충청남도 천안으로 전학을 왔는데 전화 온 지 일주일 만에 담임 선생님을 찾아 가 자기도 월 반장을 시켜 달라고 했다니 끼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빙하 모습


그가 보내온 빙하의 사진을 보면서 이 녀석이 3년 전 베트남 북쪽에 있는 사파를 관광시켜 줄 때 밀림 속에 있는 러브 폭포를 관광하면서 산행이나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사파에 있는 해발 3,000m가 넘는 산에 나와 같이 가자는 제의가 들어 왔는데 내 나이는 생각지도 않고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온몸을 쓰시게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가 봐야지. 이번 6월에 지리산 종주를 당일에 도전하여 크게 무리가 없으면 가을에 딸과 같이 베트남 사파에 있는 산에 도전에 봐야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하면서 선머슴아이 같은 딸이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건강하게 살 거라. 그리고 멋지게 살 거라. 이리저리 살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70이 넘어가니 남는 것은 아쉬움뿐이지만 늦다고 생각하지 말고 풀기 있을 때 나불대야지 하며 속으로 웃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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