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88

병상의 창틀에서

한 세상 열심히 살다 보니 부모님이 물려주신 육신이 낡아 오른쪽 날개 죽지가 찢어져 버렸네 얼마 남지 않은 영혼의 육신을 재생시키고자 명의의 수술을 받고 병실 침상에 걸터앉아 창문 너머 하늘을 바라보니 청명한 겨울 하늘 짓 파란색 속에 하얀 솜사탕 같은 뭉게구름 하나가 젊은 날의 내 모습을 연상시키네 저 구름 밤이 되면 한 방울의 이슬이 되어 대지에 있는 뭇 생명을 적셔 주듯 내 육신도 머지않아 한 줌의 재가 되어 뭇 생명의 밑거름이 되리라.

횡설수설 2024.02.10

병실

푸른 환자복 입고 목에다 거치대에 찌어진 오른쪽 날갯죽지 걸치고 오른팔의 고통을 참으려고 뭉게구름 떠 있는 창밖에 넋을 놓는다. 주둥이 노란 제비 새끼가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듯 요양사가 가져다주는 밥을 먹으며 오늘도 내 인생 하루를 헌납한다. 빠삐용의 하루가 이와 같았을까? 군복 입은 병사의 내무반 생활이 이랬을까? 답답한 내 가슴 열을 길 없어 뭉개구름의 천태만상 같이 옛 추억을 더듬으며 마음을 달래 본다.

횡설수설 2024.02.10

세월

북풍 한파 몰아치는 이른 아침 회전의자에 앉아 침대 이불에 발을 넣고 커튼 사이로 보이는 창밖을 내다보니 앙상한 느티나무 가지에 잔설이 앙상궂다. 날마다 용트림하며 떠오르던 힘찬 태양은 시베리아의 고기압에 넋을 잃었나 온데간데없고 침침한 눈 속에 나무가지에서 떨어지는 잔설 모습이 애처롭다. 봄에는 고사리손 같은 연녹색 새싹 여름에는 짙푸른 녹음 가을에는 풍족한 갈색으로 화장하던 느티나무가 이제는 애처로운 잔설로 몸을 치장했네.

횡설수설 2024.01.24

가을

잣빛 색깔이 참 맑고 깨끗하다 막 100일 된 아이의 해맑은 표정같이 어느 곳 티 하나 없는 해맑은 하늘인데 자연이 질투가 나는 듯 서쪽 끝자락에 하얀 솜털 구름 하나가 얼굴을 내민다. 참 곱게도 생겼다 바람의 힘에 겨운 듯 한들거리는 모습이 가련하면서도 당찬 붉은 코스모스 한 송이가 점고 젊었던 옛 마나님 모습같이 보인다. 실바람에 몸도 가누지 못하는 머리 흰 갈대 하나가 붉은 꽃송이에 넋을 잊고 바라보는 모습이 꼭 내 모습 같다. 엉클어진 머리칼 손질도 하지 않은 다소곳한 자줏빛 나팔꽃 한 송이가 아름다운 세상 아름답게 살다 가자고 실바람에 몸을 맡기고 나를 보며 웃고 있네, 2022. 9. 20. 용현산 기슭에서

횡설수설 2022.11.29

이제는 내 차례인가?

2021년은 나에게 새로운 마음 가짐을 하게 하는 한 해로 변해 버린 것 같다. 오토바이 사고로 장장 18년 가까이 고생하시던 장인어른이 노환으로 4월 12일 날 향년 95세로 별세하셨다. 그런데 12월 19일 요양원에 계시던 어머니가 향년 93세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자식이 무엇인지 장인어른 때는 미처 몰랐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이렇게 마음이 짠 할 수가 없다. 아마 큰 아들이 어머니를 한 번도 모시고 살지 않은 죄책감에서 오는 모양이다. 나는 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산소도 개장하여 두 분을 화장해서 두 분이 살아계실 때 만들어 놓은 자리에 잘 모셔드렸으나 가슴 아리가 쉬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본가에서나 처가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만은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

횡설수설 2021.12.31

행운의 복수초

행운의 복수초 복수초(꽃말: 영원한 행복) 2020년은 정초부터 평생 들어보지도 못했던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에 한 해를 숨죽이며 살아온 것 같다. 정초에 중국의 우한에서 발병했다며 떠들어 댈 때만 해도 곧 사라질 독감 바이러스 정도로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를 강타하다 보니 매일 흘러나오는 뉴스에 절로 기가 죽은 모양이다. 매일 흘러나오는 뉴스를 듣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사람의 심리란 그리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까짓 것 하면서도 매일 접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인가 나의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처음에는 마스크 착용이 왜 그리 불편하게 느껴 젖는지 숨이 차고 답답했는데 어느 날부터는 착용하지 않으면 허전하고 무엇을 빠트리고 온 사람같이 느껴지니 사람의 습성이란 이런 것이..

횡설수설 2021.04.11

누구를 탓하랴!

누구를 탓하라! 어이가 없다.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마스크를 벗으니 그 안에 마스크가 또 있지 않은가? 분명 약국에서 얼굴을 만져보고 약사에게까지 물어보았는데 보이지 않던 마스크가 내 턱에 걸려 있다니? 이 이야기는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다. 지난주에 임플란트 한 왼쪽 아랫잇몸이 아파 치과를 갈까 말까 망설이며 하루만 참아보지 하루만 더 기다려보지 하면서 차일피일 미룬 것이 사흘이 지났다.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통증이 가시지를 않고 잇몸이 부었다는 것을 혀로 느낄 수 있어 아침 먹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더 참지 말고 병원을 찾아가야겠다고 마나님에게 이야기했다. 그런데 양치질하면서 가그린을 조금 물고 있었더니 가라앉는 것 같아 나잇살이나 먹은 사람이 새벽 운동으로 겨울바람도 쐬었는데 또 나가는 것이 싫어 ..

횡설수설 2021.01.19

새로운 인생길로 접어든 2020년

내가 너무 오래 사는가 보다. 70 평생이 넘도록 들어보지 못했던 코로나-19라는 것으로 일 년을 고스란히 빼앗겼으니 어디에 가서 하소연하고 보상을 받아야 할지 모르겠다. 정초 조류인플루엔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세계가 꽁꽁 얼어붙었으니 무섭기는 무서운 역병인 모양이다. 그러나 나잇살이나 먹은 늙은이가 역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지만, 가족의 눈치가 보이고 주변 사람들의 눈치가 보여 조심할 수뿐이 없었다. 이제 4시간만 지나면 새로운 2021년이 돌아온다. 조용히 책상에 앉아 지나간 일 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금년도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았다. 이제는 정년퇴직 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다 보니 노년의 생활에도 완전히 적응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매년 말일 날..

횡설수설 2020.12.31

2020. 01. 09일. 행운이 가득했던 나의 하루

술 한 잔에 취기가 오르는 겨울밤이다. 책상에 컴퓨터를 켜 놓고 세상 돌아라가는 것을 검색하다 문득 오늘 하루를 되돌아보게 된다.오늘 아침도 예나 다름없이 새벽 4시에 새벽 산책을 하고 돌아 왔다. 아침을 먹고 나니 마나님은 자기 일을 나가고 아들은 주간보호세터에 가고나니 집안이 조용하다. 아침 추위에 늙은이가 두 시간이 넘게 헤매고 다녔으니 온몸이 노근하다. 생각 같아서는 침대에 조금 눕고 싶었지만 누우면 한 시간을 자는 습성이 있어 참기로 한다. 낮잠을 자고나면 몸은 가벼워 좋은데 저녁이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늙어서 그런지 저녁잠을 설치는 것이 다반사다. 잠을 두 시간 넘게 자지 못하고 뒤척인다. 깃 것 자 봐야 서너 시간인데 어느 날은 새벽 2시면 잠이 다 달아나 애를 먹인다. 특히 낮잠을 잔 날..

횡설수설 2020.01.10